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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요한복음 3:2)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메시아로서 자신의 사역이 진짜임을 입증하기 위해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모세가 출애굽기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내셨음을 증명하기 위해 기적을 행했던 것과 똑같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신 모든 말씀은 그분께서 기적을 행하신 것으로써 그 진실성이 입증되었습니다. 누가는 실제로 예수님께서 맹인을 보게 하고(눅 4:18), 다리를 저는 자를 걷게하고(눅 5:17-25), 나병 환자를 치유하시고(눅 5:12-16), 귀먹은 사람을 듣게하고(눅 4:18), 죽은 자를 살리신(눅 7:11-17) 것을 증언합니다. 사도 요한이 ‘표적’이라고 부른(요4:54), 이 기적들은 새 창조의 사역이었습니다. 메시아, 곧 기름부음 받은 분으로서 예수는 성령의 권능으로 기적을 행하여 하나님 나라가 힘있게 동터 오고 있음을 명백히 드러내셨습니다/
기적의 사역을 시작하시다: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은 가나의 결혼식에서 일어났습니다(요 2:1). 그리스도는어머니와제자들과함께이결혼식에초대받았는데포도주가다떨어졌습니다.구약성경에서 포도주가 풍성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고 계시다는 표현이기 때문에, 포도주가 떨어 졌다는 것은 이 당시 이스라엘이 영적으로 황무함을 나타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물이 가득 들어있는 돌 항아리 여섯을 모두 포도주로 변화시킴으로 그의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는 우리에게 새 예루살렘에서 있게 될 결혼식을 예상하게 하는 것으로 예수님의 영광이 충만한 메시아의 시대, 새 시대가도래했음을보여주는것입니다.
주린 자를 먹이심: 오병이어의 기적은 4복음서에서 공통적으로 나옵니다. 이 기적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먼저 “여러 가지로” 가르치신 후에야 먹이셨음을 주목해야 합니다(막 6:42). 예수님은 단순이 기적을 통해 먹이신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시고 그것에 반응하신 것입니다. 구약에서 엘리사 선지자가 보리떡 스무 개로 백명을 먹이고도 남은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의 기본적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의 배고픔을 영적, 물질적으로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나병 환자를 고치심: 나병은 사람의 몸이 말 그대로 썩어 문드러지는 끔찍한 병입니다. 나병은 육체적 고통 뿐만아니라 사회, 종교적으로 부정하게 취급되어 공동체와 격리되어 따로 생활해야 했기때문에 사람들은 나병을 두려워 했습니다. 예수님이 나병환자를 치유하실 때 그 사람을 어디로 보내신게 아니라 “온 몸에 나병 들린” 그 사람을 실제로 만지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부정하게 되신게 아니라, 그 불결한 나병 환다가 깨끗히 치유되었습니다(눅 5:13). 예수님께서는 나병 환자를 회복시키심으로써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 새 생명을 주셨습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태어날 때부터 영적 나병환자들 입니다. 우리 내면은 예수님께서 만지시기 전의 이 나병 환자의 겉모습과 같습니다. 하지만 치유의 능력이 있는, 죄를 사하시는 예수의 “손길”이 그분을 믿음으로 그분과 연합할 때 우리에게 임했습니다.
귀신을 쫓아내심: 변화산에서 내려오신 후 예수님은 귀신 들린 남자아이를 고쳐 주셨습니다 (마 17:14-19). 이 기적에서 하늘과 땅의 두드러진 대조가 선명하게 드러나는데, 산에서 영광을 확인한 뒤 예수님과 제자들은 귀신들린 남자아이와 대면합니다. 산에 오르지 않았던 제자들은 귀신들린 아이와 그 아버지를 도울 수가 없었는데, 여기서 그리스도와 어둠의 권세 사이의 싸움이 모두의 눈 앞에서 펼쳐집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단순히 하나님의 아들 이시기 때문에 귀신을 쫓아내신 것이 아니라, 성령의 권세 가운데 믿음으로 하셨다는 것입니다 (마 12:28). 기도는 믿음의 행위인데, 기도의 사람으로써 예수님은 제자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믿음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것은 이들에게 신성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죽은 자를 일으키심: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이야기에서 주목할 점은 예수님께서 마리아와 마르다의 고통 속으로 들어가셨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친구 나사로는 죽었고, 마리아와 마르다는 슬픔에 빠져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들을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 셨습니다(요 11:33).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무덤에서 나오려면 자신이 무덤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이 표적은 예수님께서 죽은 자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임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부활한 몸을 입고 영원히 하나님을 즐거워하게 될 모든 사람들의 첫 열매로서, 영광으로 부활하실 분으로서 직접 무덤에 들어가셨습니 (고전 15:23, 51-54). 이 예수를 믿는 이들은 이제 예수 안에서 영생을 소유하며, “죽어도 살” 것입니다(요 11:25).
1. 예수님께서 믿음의 사람이셨고 기도하심으로 귀신을 쫓아내셨다는 사실을 통해, 나의 믿음
생활을 돌아보고 내가 지금 믿고 기도함으로 응답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나눠봅시다.
2.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이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사역을 확증하시는 것이었음이 우리에게
주는 위로와 소망이 무엇인지 나눠봅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새) 창조의 근본이신 분” 이십니다(계 3:14).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기적들은 다 이것을 증언합니다. 하지만 기적중의 기적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장차 올 것을 맛보기로 보여주는 이들로서 이제 새 피조물(고후 5:17) 이기도 하다는 사실입니다. 영광 중에 우리는 우리 주님과 함께 포도나무 열매에서 난 것을 마실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이제까지 본 적이 없는 하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몸의 영광스런 부활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아는 것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이 이것이 사실임을 증명하기 때문이며, 우리는 훗날 이것을 완전히 누리게 될 것을 기다리면서 지금 그것을 부분적으로 체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요한복음 3:2)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메시아로서 자신의 사역이 진짜임을 입증하기 위해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모세가 출애굽기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내셨음을 증명하기 위해 기적을 행했던 것과 똑같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신 모든 말씀은 그분께서 기적을 행하신 것으로써 그 진실성이 입증되었습니다. 누가는 실제로 예수님께서 맹인을 보게 하고(눅 4:18), 다리를 저는 자를 걷게하고(눅 5:17-25), 나병 환자를 치유하시고(눅 5:12-16), 귀먹은 사람을 듣게하고(눅 4:18), 죽은 자를 살리신(눅 7:11-17) 것을 증언합니다. 사도 요한이 ‘표적’이라고 부른(요4:54), 이 기적들은 새 창조의 사역이었습니다. 메시아, 곧 기름부음 받은 분으로서 예수는 성령의 권능으로 기적을 행하여 하나님 나라가 힘있게 동터 오고 있음을 명백히 드러내셨습니다/
기적의 사역을 시작하시다: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은 가나의 결혼식에서 일어났습니다(요 2:1). 그리스도는어머니와제자들과함께이결혼식에초대받았는데포도주가다떨어졌습니다.구약성경에서 포도주가 풍성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고 계시다는 표현이기 때문에, 포도주가 떨어 졌다는 것은 이 당시 이스라엘이 영적으로 황무함을 나타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물이 가득 들어있는 돌 항아리 여섯을 모두 포도주로 변화시킴으로 그의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는 우리에게 새 예루살렘에서 있게 될 결혼식을 예상하게 하는 것으로 예수님의 영광이 충만한 메시아의 시대, 새 시대가도래했음을보여주는것입니다.
주린 자를 먹이심: 오병이어의 기적은 4복음서에서 공통적으로 나옵니다. 이 기적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먼저 “여러 가지로” 가르치신 후에야 먹이셨음을 주목해야 합니다(막 6:42). 예수님은 단순이 기적을 통해 먹이신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시고 그것에 반응하신 것입니다. 구약에서 엘리사 선지자가 보리떡 스무 개로 백명을 먹이고도 남은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의 기본적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의 배고픔을 영적, 물질적으로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나병 환자를 고치심: 나병은 사람의 몸이 말 그대로 썩어 문드러지는 끔찍한 병입니다. 나병은 육체적 고통 뿐만아니라 사회, 종교적으로 부정하게 취급되어 공동체와 격리되어 따로 생활해야 했기때문에 사람들은 나병을 두려워 했습니다. 예수님이 나병환자를 치유하실 때 그 사람을 어디로 보내신게 아니라 “온 몸에 나병 들린” 그 사람을 실제로 만지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부정하게 되신게 아니라, 그 불결한 나병 환다가 깨끗히 치유되었습니다(눅 5:13). 예수님께서는 나병 환자를 회복시키심으로써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 새 생명을 주셨습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태어날 때부터 영적 나병환자들 입니다. 우리 내면은 예수님께서 만지시기 전의 이 나병 환자의 겉모습과 같습니다. 하지만 치유의 능력이 있는, 죄를 사하시는 예수의 “손길”이 그분을 믿음으로 그분과 연합할 때 우리에게 임했습니다.
귀신을 쫓아내심: 변화산에서 내려오신 후 예수님은 귀신 들린 남자아이를 고쳐 주셨습니다 (마 17:14-19). 이 기적에서 하늘과 땅의 두드러진 대조가 선명하게 드러나는데, 산에서 영광을 확인한 뒤 예수님과 제자들은 귀신들린 남자아이와 대면합니다. 산에 오르지 않았던 제자들은 귀신들린 아이와 그 아버지를 도울 수가 없었는데, 여기서 그리스도와 어둠의 권세 사이의 싸움이 모두의 눈 앞에서 펼쳐집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단순히 하나님의 아들 이시기 때문에 귀신을 쫓아내신 것이 아니라, 성령의 권세 가운데 믿음으로 하셨다는 것입니다 (마 12:28). 기도는 믿음의 행위인데, 기도의 사람으로써 예수님은 제자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믿음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것은 이들에게 신성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죽은 자를 일으키심: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이야기에서 주목할 점은 예수님께서 마리아와 마르다의 고통 속으로 들어가셨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친구 나사로는 죽었고, 마리아와 마르다는 슬픔에 빠져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들을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 셨습니다(요 11:33).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무덤에서 나오려면 자신이 무덤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이 표적은 예수님께서 죽은 자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임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부활한 몸을 입고 영원히 하나님을 즐거워하게 될 모든 사람들의 첫 열매로서, 영광으로 부활하실 분으로서 직접 무덤에 들어가셨습니 (고전 15:23, 51-54). 이 예수를 믿는 이들은 이제 예수 안에서 영생을 소유하며, “죽어도 살” 것입니다(요 11:25).
1. 예수님께서 믿음의 사람이셨고 기도하심으로 귀신을 쫓아내셨다는 사실을 통해, 나의 믿음
생활을 돌아보고 내가 지금 믿고 기도함으로 응답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나눠봅시다.
2.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이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사역을 확증하시는 것이었음이 우리에게
주는 위로와 소망이 무엇인지 나눠봅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새) 창조의 근본이신 분” 이십니다(계 3:14).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기적들은 다 이것을 증언합니다. 하지만 기적중의 기적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장차 올 것을 맛보기로 보여주는 이들로서 이제 새 피조물(고후 5:17) 이기도 하다는 사실입니다. 영광 중에 우리는 우리 주님과 함께 포도나무 열매에서 난 것을 마실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이제까지 본 적이 없는 하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몸의 영광스런 부활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아는 것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이 이것이 사실임을 증명하기 때문이며, 우리는 훗날 이것을 완전히 누리게 될 것을 기다리면서 지금 그것을 부분적으로 체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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